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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 완벽할 순 없다. 세상을 살다 보면 싫어도 인정해야 하는 일이 있다. 그것이 비록 자신의 신념에 상치된다 해도 말이다. 얼마 전 결혼을 한 친구가 있다. 그 녀석은 오랫동안 주식으로 일확천금을 노려왔다. MB정부의 노림수를 멋지게 간파한 탓인지 자전거 관련 테마주를 샀다가 며칠 만에 1,500만원을 벌었다고 내게 기꺼이 점심을 사주기도 했다. 하여튼 그 친구의 작업실에 놀러 가면 컴퓨터 모니터에 한효주가 늘 전영소녀(비디오 걸 아이)처럼 등장했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세상의 따사로움을 모두 흡수한 듯 해맑은 표정으로 귀엽게 웃고 있었다. “뭔 일이냐? 효주가 그렇게도 좋냐?”라고 놀려댔다. 한효주와의 촬영이 잡히면 친구를 꼭 초대하겠다고 허풍도 부렸지만, 결국 그냥 무심코 넘어가고 말았다. 그러다가 작년 가을 <달려라 자전거>의 인터뷰가 잡혔다. 어딘가 비딱하거나 재미난 이야기를 뽑아낼 수 있을 것 같은 스타를 고르다 보니, 난 남규리를 바로 선택했고, 한효주는 섭외 후 무심코 후배에게 떠넘겼다. 그 후 시간이 10개월 정도 흘렀다. 집에서 차가운 바닥에 둥근 배를 깔고 <찬란한 유산(燦爛的遺產)>을 즐기다 보니, 나의 ‘완전한 실수’였다는 걸 인식하고야 말았다. 한효주는 내가 잠깐 생략을 해도 될 배우가 아니었다. 그래, 그만그만한 연기자가 아니었다. 아, 친구야, 미안해, 너의 선견을 미처 알아보지 못하다니. 다음에는 네가 뽑아주는 주식으로 몰빵할께!
다행히도 그때 한효주라는 이름을 그냥 내칠 수는 없었다. 그래서 그녀가 촬영하는 날, 압구정동 키메라 스튜디오에 슬쩍 놀러 가긴 했다. 홍보사 측에서 “어머, 기자님! 인사하셔 야죠!”하며 소개를 시켜주려 했지만, 난 단호히 거절했다. 그렇게 주먹만한 얼굴에 눈, 코, 입이 균형감 있게 배치되어 있는 소녀에게 다가가는 게 몹시 미안했다. 나중에 내가 얼굴을 반쪽으로 만들고 나서야 인터뷰해야 할 자격이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자괴감마저 들었다(과연 나는 얼마나 축소 수술을 받아야 소녀들과 인터뷰 할 자격이 주어질까?).
다소 멀리서 그녀의 토끼 같은 표정만 뻘줌하게 훔쳐보는 것에 만족했다. 글 잘 쓰는 모 후배는 한효주를 한마디로 “맑다”라고 표현했고, 효주의 의상을 꼼꼼하게 신경 써주던 모 후배는 “선배, 어떡해요, (쟤) 너무 착해요”라고 옆에서 노래를 불렀다. 그야, 누구나 그녀의 연기를 보면 눈치챌 수 있는 일이 아닌가! 그녀처럼 토끼 같은 표정을 지닌 배우가 내숭을 떤다는 건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다. 내가 그녀에게 관심을 갖은 건 <아주 특별한 손님>이었다. 그 영화의 포스터처럼 그녀는 표정이 하나인 친구였다. 당시 <논스톱5(NON STOP 5)>에 데뷔하기 전부터 미스 빙그레 선발 대회에서 수상을 했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그저 CF에 어울리는 마스크라고 단정을 지어버렸다.
이윤기 감독이 영화에서 여배우들을 다루는 방식 덕분에, 그녀가 조금 특별해 보이긴 했지만, 이렇다 할 감동을 주지 못했다. 물론 빛나는 소녀의 얼굴을 무기로 가졌지만, 감정의 스펙트럼이 없다는 게 나를 미치게 만들지는 못했다. 그녀는 아직 5%는 부족해 보였다. 아마도 그건 착한 영화 <달려라 자전거>도 마찬가지였다. 이 영화에서 “착한 척 하는 거 지겹지도 않냐?”라고 남동생이 하정 역의 효주에게 묻는다. 그러나 그녀는 특별한 대꾸도 하지 않고, “자전거 타기나 가르쳐 줘!”라고 동생에게 부탁을 한다. 난 그녀가 착한 캐릭터, 착한 영화 안에 갇혀버릴까 은근히 걱정이 되었다. 물론이다. 이를테면 그린타임 녹차 CF에서 “난 사랑에 빠졌죠”라는 노래가 흘러나올 때 붓을 들고 있는 ‘효주 특유의 표정’으로 그렇게 굳어지는 게 아닐까 염려스러웠다. 적어도 그녀가 박제된 CF 스타가 아니라 살아 숨쉬는 배우이기를 희망했기에.

<달려라 자전거>에서 그녀는 말한다. “난 변할 게 없어!” 그저 지방 9급 공무원의 길을 가겠다며 편안한 웃음을 보였다. 정말 그렇게 살 수 있을까? 인간이 욕심 없이 산다는 게 거짓이라는 것은 잘 알지만, 왜 그런지 효주 만큼은 그렇게 살 수 있을 것처럼 보였다. 이 소녀는 여전히 시대착오적인 플라토닉 러브를 품에 안고 있는데, 어딘가 그럴싸했다. 아니, 그냥 믿어주고 싶었다. 이것만으로도 내가 낚였다는 건 확실했다. 여기서 한효주의 ‘물끄러미 쳐다보기’하나 만은 일품이라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
그 후 그녀의 진화와 성장을 차기작으로 기대하고 있었는데, 놀랍게도 효주의 변화는 스크린이 아니라 브라운관이 먼저 였다. 혹자는 <찬란한 유산>을 보고 “표정 똑같은 데 뭐가 다른데?”라고 물을 수도 있지만, 그녀의 클로즈업은 예전과 달랐다. 이 드라마 속에 등장하는 반효정, 유지인, 김미숙, 심지어 신인 문채원과의 클로즈업과 비교해보면 차이가 확연히 드러난다. 효주는 예쁜 얼굴을 고정시키고 장시간 웃고 있는 법이 없다. 항상 “아휴~”하며 한숨을 쉬거나 귀를 만지거나 뒷머리를 만지거나 하면서 얼굴에 조금씩 변화를 주고 있다. 머리를 계속 흔든다. 심지어 혀를 내밀거나 “헤헤헤”, “으흐흐흐”하고 웃기도 한다. 손뼉치기도 한다. 어머나, 이건 정석이 아니다. 나름 변칙 플레이를 감행하고 있는 셈이다. 다른 베테랑 여배우만큼 클로즈업을 롱 테이크로 끌고 나갈 카리스마는 여전히 부족하지만, 그 장면의 분위기를 장악하는 법을 스스로 터득한 게 분명하다. 그것이 그녀가 살아 남는 방법이었다. 다소 어색하지만, 그 어색함을 또 다른 매력으로 덧칠해 나가고 있다. 마음에 밀면 무조건 밀어붙이거나 끝까지 할 말 다하는 ‘저기요 걸’이면서도, 동시에 그녀의 ‘은성이’는 귀여운 ‘감탄사 걸’이다. 그녀에게 삶은 감탄의 연속이다. 그녀와 애증관계에 빠진 환이 역의 이승기(李勝基)가 뾰루퉁한 표정으로 “됐어!!”라고 말하는 게 폼 나게 먹히는 것과 똑같은 의미에서 말이다.
최근에는 <찬란한 유산>에서 환이 이승기가 “너 같은 애가 캔디지?”라고 효주에게 노골적으로 질문한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이, “그럼 나 같이 불행한 애는 웃지도 말아야 하나요”라고 받아친다. 이거야 말로, 작가가 이 드라마를 보는 시청자들과 적당히 머리싸움을 한다는 증거였다. 착한 여주인공이 나오는 모든 드라마가 캔디지만, 그래도 여전히 재미있는 게 이런 드라마라고 항변하는 것 같았다. 조금은 뻔뻔하지만, 분명 이유 있는 강단이었다. 마치 짜고 치는 고스톱에 껴든 느낌이랄까? 결코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다. 아마 지금의 효주에게 필요한 것이 바로 이런 것이다. 조금은 뻔뻔해지기! 그래서 놀랐을 때 만화책처럼 동그란 눈이 되거나 손으로 입을 가리는 것 말고도, 분위기로 모든 걸 전달할 수 있는 날이 오는 것. 가능하다면 이게 드라마가 아니라 넓은 스크린이었으면 좋겠다. 선우정으로 나온 한예원이 준세로 나온 배수빈에게 묻는 신이 있다. “도대체 은성이 어디가 좋아?”라고. 그러자 수빈은 말한다. “생각이 좋아!” 흔하고 뻔한 대사지만, 나 역시 전적으로 동의한다. 한효주, 그녀는 생각이 좋다. 지금은, 그것만 잊지 않아도 충분하다.
PREMIERE 웹에디터: 전종혁
PHOTO: 우정훈
























































